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뤼흐 스피노자 (문단 편집) === 역량과 코나투스 ===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모든 것의 최초 원인을 찾아가는 일이라면, 반대로 모든 것은 이 실체라는 최초 원인에서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즉, 자연에 있는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모든 개체는 이러한 인과적 질서의 무한한 연쇄를 통해 결정되는 것이다. 이로서 스피노자 사상을 특징짓는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모든 개체는 인과관계에 의해서 '''필연적'''이라는 것. 따라서 인간에게 '자연에서 독립된 그 자신만의 자유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 스콜라 철학자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라고 스피노자는 생각한다. 만약 인과적 자연법칙이 인간에게만 예외적이라서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지닌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치 '국가 속의 국가'(Imperium in Imperio)처럼 한 국가 안에서 상반된 두 개의 법이 동시에 적용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혼란만 가져오기에, 자연의 법칙은 인간과 인간 외의 것들에 대해 일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스피노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처럼 유한한 모든 개체들이 단지 신의 필연적 변용일 뿐이라면, 인간들이 느끼는 자유의지는 무엇이란 말인가? 스피노자에게 자유란, '오로지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만 존재하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행동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신만이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으므로, 오직 신만이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의는 인간 존재가 어느 정도까지는 부분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것은, (우리의 필연적인 활동 역랑 내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 자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는 '오로지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으로부터만 존재하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행동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오직 신만이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으므로, 오직 신만이 이러한 의미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 정의는 인간 존재가 어느 정도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행하는 것은 때때로 어느 정도까지는 우리 자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J. 토마스 쿡 『스피노자의 에티카 입문』 2016. 서광사. p.172)] 이것은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관계가 비록 인과의 필연성에 의해 한계지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 관계에서 '무엇을 지켜낼 것'인지의 자유[* 물론 이 자유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스피노자가 정의한 바대로 '자기 자신에 의해서 자신의 행동이 결정되었다'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이는 부분적으로 우리가 신이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신 즉 자연(인간)) 자유는 오직 신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는 우리에게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개체 내부에 그러한 역량이 없다면 개체는 곧 분리되어 없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개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따라서 개체는 마주하는 수많은 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본질에 고유한 "'''활동 역량'''"(Potentia)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이 활동 역량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conatur)'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노력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코나투스'''(Conatus)다.[* 따라서 양태들의 고유한 역량은, 다른 양태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코나투스를 보존하려는 노력에 의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즉, 양태들은 다른 양태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실존하게 되며, 이러한 양태들 간의 무한한 인과관계로부터 자신의 존재 역량이 결정된다. 양태들은 자신의 고유한 역량의 정도에 상응하는 외연적 관계를 갖지 않고서는 결코 실존하지 못한다.] 코나투스가 인간의 정신에만 관계될 때, 그것은 '의지'가 된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과 신체 모두에 관계될 때, 그것은 '욕구'가 된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욕구는 인간의 본질이다. 스피노자는 물체에 있어서의 이 역량을 '운동과 정지'의 관계로 이해함으로써 개체의 발생 원리를 설명하고자 한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물체(연장)에는 운동과 정지 외에 다른 변용이 없다. 모든 물체는 '운동과 정지의 일정한 비율'일 뿐이다." 즉 모든 개별 물체의 발생과 변화를 설명하는 내적 원리는 '운동'에 달려 있으며, 자연 만물은 그 자체 내에 제각기 특정한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유지하려는 역동적인 역량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코나투스가 관성이라는 뜻에서 나온 개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스피노자가 왜 '운동과 정지'로 이를 설명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도출된다. 나를 '지키고자' 하는 힘(코나투스)이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즉, 지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의 '운동 비율'을 유지하려고 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자기 보존의 노력은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 된다. 여러 물체들이 합성되어 만들어지는 복합물체는 그 운동과 정지의 메커니즘이 좀더 복잡하다. 각 부분들이 서로에게 자신의 운동을 전달하는 어떤 일정한 방식으로 운동하면서도 그들의 합인 전체는 그 개체가 가지는 고유의 '운동과 정지의 비율'을 유지할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 물체들이 서로 통일된 하나의 개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본다면 '운동과 정지의 비율'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개체 전체로 봤을 때 '운동과 정지의 비율'이 동일하게 유지되는 한, 그것은 동일한 개체로 유지되며, 그 개체는 "자기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용하고 또 변용될 것이다.] 각 부분은 전체 개체의 본성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고, 어떤 때는 느리게, 어떤 때는 빠르게 움직이며, 그리하여 자신의 운동을 다른 부분에 더 빠르게 또는 느리게 전달한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통일된 유기체(생물)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특정 부분을 빠르게 움직이거나 느리게 움직이는 것과 같다. 즉, 복합물체가 물체로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것의 부분들이 서로 상호작용함으로서 '운동과 정지의 비율'의 이러한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의 통일된 개체가 다른 통일된 개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자신을 포함하는 더 큰 개체의 부분이 되어 계속해서 이렇게 무한히 확장해 나간다면, 우리는 자연 전체가 하나의 개체(유기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부분들은 무한한 방식으로 변화하지만 전체로서의 개체에는 아무런 변화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